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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누리 ‘여름과 공멸’(시집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보름 가까이 되었다. 이번 학기엔 대학 수업을 하나 맡아 일주일에 한 번, 야트막한 언덕 끝 강의실로 향한다. 안팎으로 녹음이 짙은 그 길을 참 좋아한다. 우거진 그늘 아래 오가는 대학생들의 느긋한 걸음, 급작스레 터지는 웃음, 그야말로 생기.
강의실은 아직 비어 있다. 준비한 자료들을 꺼내놓는다.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내게 국민주택 과연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다.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어두워질 때도 있다. 하루 종일 준비에 몰두하다 피식 웃음 짓기도 한다. 학생 때보다 더 열심인 것 같다. 자연히 내 선생님들을 떠올린다. 지금 내 연배이거나 심지어 더 어리기도 했던, 그들도 나처럼 가진 것들을 셈해 보았을까. 우울해했을까. 그랬겠지. 삶이란 뭐 그리 다를 게 없으니. 그런 마음은 애틋 생애최초주택구입자란 하고 알 수 없는 용기를 얻는다. 하나둘 학생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었던 자리가 채워지고 어색함에서 오는 긴장감으로 나른하기까지 한 금요일 오후. 강의실 뒤편 창문으로 볕이 쏟아진다. 세상이 저쪽에 있는데, 시(詩)도 저리로부터 올 터인데. 학생들을 꼬드겨 밖으로 가고 싶다. 한적한 캠퍼스를 소요하며, 사는 얘기나 나누고 싶다. 깊게 심호흡하고, 맘 약한 신원 소리도, 공상도 여기까지. 그런 시대가 아닌데, 휴대폰으로 간단히 출석 체크를 할 수 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본다. 얼른 외워야지. 오래 기억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세 시간가량 이 수업이 끝나면 기진맥진이다. 가진 영혼을 다 털어놓은 기분이다. 다시 텅 비어버린 강의실 뒤쪽 창문 너머 저문 빛 머문 풍경이 보인다. 다음 수 대출영업사원 업은 더 잘해야지. 이제 엄살 같은 건 부리지 않겠다, 그렇게 조금씩 어엿해져 간다.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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