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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경기 양평군 메덩골 정원의 대표 건축물 현대정원 '위버하우스'가 푸른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경기 양평군 메덩골 정원 한국정원을 항공 촬영한 사진.
불혹을 조금 넘긴 나이에 수천억대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십 수 년간 키운 회사를 매각하고 나니 공허함이 몸을 감쌌다. 인문학과 철학으로 공허함을 메웠대박주식추천
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책 ‘위버멘시(Ubermensch·초인)’를 접하고 머리가 틔었다. 니체의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는 말에 후대를 위한 유산을 남기기로 했다.
고뇌하던 은둔의 자산가가 유산을 내보이기까지 꼬박 13년이 걸렸다. 지난 1일 경기 양평군에 국내 최초 인문학 정원을 표방하는 '메덩골 정주식검색
원'이 문을 열었다. 메덩골은 메꽃이 흐드러지는 골짜기란 뜻이다. 전체 19만8,000여 ㎡(약 6만 평) 규모의 정원은 크게 한국 전통 정원의 맥을 계승하는 '한국정원(2만3,100㎡)'과 철학과 예술이 조화를 이룬 '현대정원(4만9,500㎡)',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숲(13만 ㎡)으로 구성돼 있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 등 국내외 유명 건뽀빠이릴게임
축가와 조경가들이 정원 설계에 참여해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1인당 입장료가 5만 원이지만 개장 이후 보름간 500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정원은 하루 최대 150명 입장 가능하다.
민초부터 선비까지, 한국의 정신 담은 정원
매수시점
한국정원 '민초들의 삶' 남도돌담길 주위로 작물이 자라 있다.
한국정원 '민초들의 삶' 메덩내의 빨래터.
먼저 문을 연 한국정원의 첫손오공 릴게임
주제는 ‘민초들의 삶’이다. 왕족과 사대부의 문화로 치부된 정원을 민초의 삶의 터전으로 재해석했다. 관상이 아닌 생계를 위해 길러진 목화, 가지, 고추, 벼 등 작물을 정원수로 삼았다. 작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남도돌담길’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걷는 영화 '서편제'의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재현됐다. 돌담길 입구는 동요 ‘고향의 봄’을 되살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구절처럼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진달래가 빽빽하게 자라 있다.
농촌 마을을 수호하는 ‘서남당’을 지나면 김홍도의 그림 '빨래터'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한 작은 계류가 있다. 한 단 높이로 조성된 연못 ‘용반연(龍返淵)’에서 바위를 타고 흘러내린 물이 이곳에 모인다. 물가에는 단풍나무와 화살나무, 물철쭉 같은 야생 식물이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우거진 수풀과 들쭉날쭉한 바위 탓에 으레 정원이 들어서기 전부터 흐르던 물길이라 생각하지만, 인공적으로 조성한 계곡이다. 25톤 트럭 300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의 돌을 공수해 400m나 흐르는 계곡을 만들었다.
한국정원 '선비들의 풍류' 함소연 오른쪽으로 파청헌이 시원하게 보인다.
한국정원 '선비들의 풍류'의 검은 연못 '무영원'
‘민초들의 삶’을 지나면 ‘선비들의 풍류’를 주제로 꾸며진 정원이 나온다. 벼슬아치인 ‘양반’이 아닌 학문과 풍류를 향유하는 ‘선비’를 떠올리며 조성했다. 선비의 정원에 들어서면 연못 '함소연(咸蘇淵·하늘을 비추고 담 넘어 땅을 담는다)'이 처음 눈에 들어 온다. 연못은 둥글지 않다. 메덩내의 물이 뒤집힌 ‘ㄷ’ 자로 흐르며 두 개의 사각 연못을 만든다. 전통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 사상을 담았다. 연못 한가운데 놓인 둥근 돌은 하늘을 상징한다. ‘고향의 봄’ ‘빨래터’처럼 구역 이름이 일상 언어로 지어진 민초의 정원과 다르게 선비의 정원에는 한문 이름이 붙기 시작하는 점이 흥미롭다.
연못 뒤에는 ‘파청헌(把靑軒·푸르름을 잡는 집)’이 있다. 고려말 은둔 선비 운곡 원천석의 시구 “술잔을 들고 푸른 산을 대한다(파주대청산·把酒對靑山)”에서 이름을 따고, 전남 강진 월출산 자락의 별서 정원, 백운동 원림을 참고해 지었다. 이름처럼 푸른 산과 하늘이 붙잡힐 듯 트인 전망이 으뜸이다. 기둥에 걸린 주련(柱聯)에 주렁주렁 이어진 시구를 읊다보면 자연과 벗하고 풍류를 논하던 옛 선비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파청헌 뒤 담장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 가옥 마당에서 흔히 자라는 감나무가 보인다. 이 당연한 듯한 모습에는 사실 비밀이 있다. 원래 감나무는 남부 지방에서 잘 자라고, 양평처럼 겨울 추위가 매서운 곳에서는 키우기 어렵다. 한국 전통을 살리기 위해 용문사 인근에서 양평의 추위에 적응한 감나무를 어렵게 찾아 옮겨 심었다고 한다.
유생들의 전당... 승효상 건축가의 '선곡서원'
한국정원 '선비들의 풍류' 섬휘루에서 바라본 용반연과 영현당.
한국정원 '선비들의 풍류' 영현당에서 바라본 용반연과 섬휘루.
파청헌을 나서 검은 연못의 ‘무영원(無影苑)’과 고샅(좁은 골목)을 지나면 한국정원의 중심 ‘영현당(英玄堂)’이 너럭바위 위에 서 있다. 두꺼비를 닮은 바위 ‘서섬암(瑞蟾巖)’이 떡하니 용반연(龍返淵)을 바라보고 있다. 연못 건너 ‘섬휘루(蟾輝樓)’의 ‘섬휘’는 직역하면 ‘두꺼비의 빛’이다. 달에 두꺼비가 산다고 믿었던 선조들은 이를 ‘달빛’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달빛누각’이다. 선비들은 ‘미음완보(微吟緩步)’로써 정원을 감상했다. 시를 읊으며 걸음마다 정원을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선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니 가만히 서서 풍광을 바라보지 말라’는 의미다. 영현당과 섬휘루를 오가며 용반연을 눈에 담으면 체감할 수 있다.
한국정원 '한국인의 정신' 선곡서원이 유생바위 뒤로 보인다.
한국정원 '한국인의 정신' 선곡서원.
파청헌 뒤 경주솔밭 너머 보이는 정원은 문외한의 눈에도 범상치 않다. 풀 한 포기 없이 거대한 바위만 한 무더기다. 이 바위는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생을 상징한다. 바위 너머로 웅장한 콘크리트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승효상 건축가가 경북 안동 병산서원 등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킨 '선곡서원(旋谷書院)'이다. 한국인의 정신을 대표하며 학문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했던 유생들의 정신이 봉황으로 승화돼 날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했다. 선곡서원의 '취병루'는 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떠올리게 한다. 취병루에 올라 주변을 보면 고요한 산세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을 들게 한다.
한국정원 '한국인의 정신' 경외암 내부에 좌종이 놓여 있다.
조선의 주류 정신인 성리학을 상징하는 서원을 돌아 숲길을 통하면 숨어 있는 암자를 찾을 수 있다. 불교 정신을 표현한 ‘경외암(逕外庵)’이다. 내부에 놓인 좌종을 가볍게 두드리면 깊고 맑은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암자와 공명하는 듯한 울림에 만물이 나이고 내가 만물이라는 부처의 말씀이 떠오른다. 좌종 뒤 통창으로는 잔잔한 물과 자잘한 마사토뿐이다. 정원 전체를 통틀어서 명상하기 가장 좋은 장소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정원
현대정원 '위버하우스'의 특징적인 콘크리트 기둥들.
한국정원 '선비들의 풍류' 영현당에서 전통 공연이 열리고 있다.
16개의 녹색 기둥이 우뚝 솟은 '위버하우스'는 내년 5월 개장되는 현대정원의 일부다. 세계적인 건축가 마우리시오 페소와 소피아 본 에릭사우센 부부가 설계했다. 설립자가 영감을 받은 니체 철학의 핵심 개념인 위버멘시를 건축으로 표현했다. 위버하우스처럼 현대 철학을 담은 건축물들이 더 들어설 예정이다.
한국정원만 둘러봐도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난다. 눈으로 둘러보는 정원이라기보다 마음으로 공간을 오롯이 느껴보라는 설립자의 취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루 4회 회당 30여 분씩 진행하는 도슨트는 회차당 내용이 다르다. 이를 듣고 전통 공연까지 감상하고 나면 철학과 사색의 공간으로서의 정원을 체감하게 된다.
정원을 방문한 한 50대 여성은 “정원을 시각적으로 보는 것은 일부분이고, 기저의 이야기와 사상을 이해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며 “도슨트를 미리 듣고 정원을 감상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원을 찾은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건축가와 조경가가 철학자의 정신세계를 조형언어로 풀어낸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메덩골 정원 한국정원을 항공 촬영한 사진. 맨 앞부터 '민초들의 삶', '선비들의 풍류', '한국인의 정신'.
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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